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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기

신발 두 켤레

hwriter 2015. 10. 3. 00:00

동생이 새로 산 구두 두 켤레가 작다고 나에게 줬다.

내가 발이 한 치수 작아서.

그런데 가져오자마자 엄마가 좀 더 작고 살짝 노티나는 스타일의 구두를 찜하는 거다.

그리고나서, 동생이 나중에 더 큰 구두를 다시 신어보겠다고 갖다달랬는데

그 얘길 엄마에게 했더니 깜짝 놀랐다.

지금 생각해보면 자기가 찜해놓은 구두를 도로 가져가는 줄 알고 그랬던 듯하다.

엄마의 신발은 내 신발보다 세 배 정도 많다. 엊그제 신발장 정리하면서 확인.

물론 내가 신다가 안 신는 운동화도 못 버리게 하고 자기가 챙긴 것도 있는데.

그래도 옷도, 신발도 엄마가 훨씬 많다. 내가 그 쪽에 그닥 관심이 없기도 하고.

동생은 디테일에 신경 쓰는 타입이라, 심플한 걸 선호하는 나와 취향이 맞지 않는다.

준다는데 안 받을 수도 없고 해서 받아온 거니 엄마가 원하면 물론 줬을 거다.

그런데, 엄마는... 계속 말하는 품이

이런 반짝거리는 거 나도 안 좋아하는데... 어쩌구저쩌구 하면서.

마치 내가 제발 신어달라고 애걸복걸이라도 한 듯 말하는 거다.

그냥 내게 아쉬운 소리를 하기 싫었던 것같다.

예전에 직장을 다닐 때 나보다 세 살 어린 것이 내게 아쉬운 소리를 하기 싫어했던 걸 기억한다.

내가 자기보다 밑엣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아쉬운 소리를 하기 싫어했던 것 같은데.

엄마도 마찬가지다.

그래서 내가 "엄마가 찜해 놓고서 왜 내가 신어달라고 한 것처럼 말하냐"고 했더니,

찔렸는지 "찜해놨다니 흐흐흐" 몇 번 되뇌이면서 방으로 들어간다.

엄마는 자기의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타입이 아니라.. 피곤하다.

일부러는 아니더라도 내가 평소에 그런 쪽에 욕심이 없는 걸 모르지도 않을텐데

왜... 그런 식으로 사람을 대하는 걸까.

이렇게 생각하다가, 문득 내가 신기로 한 신발을 뺏어가는 게 미안해서 그랬던 걸까..

라고 잠시 생각해도 봤지만, 아니, 미안하면 더 솔직하게 말해야지.

이런 반짝거리는 거 나도 안 좋아하는데 어쩔 수 없네.

는 도대체... 좋은 쪽으로 생각할 수가 없다.

미안하다는 그런 류의 아쉬운 소리를 하기가 싫어서 그렇다고 밖에는..

 

아, 좀 더 생각해보니, '내가 신으면 안되겠니'라고 묻는 절차를 생략하고

그냥 구두를 가지려는... 반드시 필요한 중간단계를 생략한 게 맞는 것같은데,

나를 가족으로 생각하면 저럴 수가 없다, 정말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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